양자통신 실용화되면 기존 암호화는 모두 깨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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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미래’, ‘꿈의 컴퓨터’, 심지어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라고까지 불리는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는 양자역학의 구루 리처드 파인만의 발상을 실용화하려는 시도다. 기존의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게이트 대신에 양자를 연산자로 사용함으로써 중첩과 얽힘 등 양자의 성질을 통한 병렬 계산이 가능해져 지금의 컴퓨터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른 연산을 처리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슈퍼스타 기대주다.기존 컴퓨터와는 행태가 아예 다른 물건이라서 사용 목적에 따라 둘을 각각 따로 쓰게 되리라는 등의 반론도 만만찮지만, 양자 컴퓨터가 앞으로 대용량 초고속 정보처리 기술에 기반한 초정보화 사회의 결정적 변수가 되리라는 일반적 전망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양자통신(Quantum communication)’은 양자역학, 특히 양자광학의 기본원리를 이용해 정보를 생성, 전송, 처리, 저장하는 통신기술이다. 빛을 전자기파 파동인 동시에 ‘광자’라는 입자로 해석하여 빛의 특성과 매질과의 상호작용을 양자적 관점에서 풀어내는 양자광학 이론에 기반한 통신의 방식이 곧 양자통신이다.

방식 자체로 암호화 효과를 거두니 양자통신을 흔히 양자암호통신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양자통신과 ‘양자암호학(Quantum cryptography)’은 그 성격상 각각의 분과로 볼 수 있으며 논하는 바 주제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개념 관리라 할 수 있다.

양자통신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자체로 완벽에 가까운 보안성을 달성한다는 점이다. 양자의 성질을 이용하여 암호화 및 복호화 키를 생성하고 분배하고, 해당 키로써 일반적 대칭키 알고리즘에 따라 정보를 암호화한다. 디지털 정보의 복제가능성 때문에 기존의 통신 방식은 통신구간 중간에 누가 개입해 정보를 빼내더라도 탈취 사실을 아예 알 수 없지만, 양자통신을 이용한다면 양자의 복제불가능성 때문에 ‘중간자 공격(Man-In-The-Middle Attack)’이 원론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양자통신의 장점이 워낙 분명하니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관련 연구에 몰두하고 있어 실용화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양자통신을 연구하고 있고, 지난 10월 20일 통신사 SK텔레콤에서 국내 최초로 양자통신 시제품 공개를 발표했다.

사회적 관심도가 높지 않고 따라서 연구의 출발도 늦었고 지금도 몇몇 연구자와 기관만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탓에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아직 너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긴 하나 앞으로 많은 발전이 기대되는 명실상부 미래창조과학 분야다.

특히 통신사 입장에서 볼 때 양자통신은 차세대 대규모 망기술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과거 브로드밴드 망기술이 그러했듯 한국이 다시 한 번 ICT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양자통신 전체 또는 부분의 물리적 영역만 따지더라도 국가 인프라 수준으로 거대한 사업이다.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데, 양자통신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자 그 부작용으로서 온갖 오해가 잇따른다.

“양자통신이 실용화되면, 기존의 암호화 체계는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자통신이 실용화된다 하더라도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되지 않는 이상 현재의 암호화 시스템은 안전하다. 양자통신 기술은 양자 컴퓨팅을 이용한 암호 해독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위 질문은 수학적 계산 복잡성, 특히 소인수분해 계산과 이산대수 문제의 어려움을 이용하는 현재 암호화 알고리즘은 동시성 계산이 가능한 양자 컴퓨터 앞에서는 완전히 무장 해제 당하게 되므로 결국 무용지물 아니냐는 공포인데, 이는 양자통신과 ‘양자 컴퓨팅(Quantum Computing)’을 오해한 결과다. 앞서 말한 양자통신과 양자암호를 혼용하는 관행의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양자 컴퓨터의 등장으로 비약적으로 높아진 컴퓨팅 파워에 의해 현재 사용하는 암호 해독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리라는 걱정인데, 어차피 양자 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완전히 다른 알고리즘을 사용하므로 그 환경에 특화된 완전히 새로운 알고리즘이 개발되지 않는 한 ‘무장 해제’ 당할 일은 없다.

기존 암호화 체계를 모두 무너뜨리게 될 거라고 말하는 양자 컴퓨터, 아직까지는 주변 환경 민감성 등 해결해야 할 자체 문제가 많고 상온 초전도체 개발의 필요 등 다른 기술적 문제와도 얽혀 있어서 아직 실용화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 된다 하더라도 암호 해독 알고리즘은 고사하고 아주 기본적인 전산 알고리즘부터 모두 새로 설계해야 한다.

2011년 ‘D-WAVE’가 상용화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품었으나 정작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지금은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연구자는 “양자 컴퓨터 실용화는 넉넉잡아 앞으로 100년은 걸릴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따라서 오늘날 양자 컴퓨터 기술을 보며 암호화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은, 18세기 이탈리아 해부학자 루이지 갈바니가 전기자극을 통한 근육수축을 발견했던 개구리 뒷다리 실험을 보면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를 상상하며 미리 겁먹는 것과 마찬가지 기우다.
양자 컴퓨터야말로 기술 진화의 밑거름인 상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재, 그 중에서도 지구대표선수급이라는 점은 무조건 긍정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아주 멀다.